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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 (1919) 정보, 줄거리

by 뚱후니 2023. 6. 10.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 정보

1919년에 김도산이 극본 및 연출을 맡아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공개되었는데, 의리적 구토의 개봉일인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2019년을 한국 영화 100주년으로 기념하기도 했다. 의리적 구토에서 "구토"는 먹은 것을 게워낸다는 뜻이 아니라 "원수를 갚음"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 "아다우치"의 한자 표기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기사를 보면 만원 사례를 이룬 개봉 당일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영화표 가격은 1등석 1원, 2등석 60전, 3등석 40전이었다고 한다. 서민음식 취급을 받던 설렁탕 한 그릇이나 담배 한 갑이 당시 10전이었다고 하니 아주 못 볼 가격은 아니었지만, 1등석 가격은 부담스러워하는 서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의리적 구토는 온전한 극영화가 아니라 기차나 서울역 등 극장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장면을 촬영해 연극 공연 중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연쇄극의 형태였기 때문에 영화가 아니라 연극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 의리적 구토 줄거리

주인공 송산은 본시 부유한 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직이 모친을 잃고 계모 슬하에서 불우하게 자라난 몸이었다. 집안이 워낙 부유하고 보니 재산을 탐내는 계모의 간계로 말미암아 가정엔 항상 재산을 둘러싼 알력이 우심했다. 이리하여 송산은 이 추잡한 가정을 떠나 좀더 참된 일을 하다가 죽으려는 결심을 하는데, 우연히 뜻을 같이 하는 죽산과 매초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한다. 한편 계모의 흉계는 날로 극심해 가서 드디어 송산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송산의 신변이 위태로워짐을 알게 된 의동생 죽산과 매초가 격분해서 정의의 칼을 들지만 송산은 이를 말린다. 그는 오직 가문과 부친의 위신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꾹 참고 견디자니 마음이 울적하고 괴로워 맹리 술타령으로 보낸다. 이러한 송산의 은인자중도 보람없이 드디어 최후의 날이 오고야 마는데.. 

 

영화 의리적 구토 평가 및 후기

신파 연쇄극이였던 의리적 구토의 인기는 당시 어마어마 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영화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개봉했으니 말이다. 서울의 기생들이 모두 인력거를 타고 단성사로 몰려들었다 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필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에 따르면 권선징악형 활극이었다고 한다.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복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과거에도 현재에도 권선징악의 내용이 관객들의 마음을 잘 움직이는 것 같다. 영화 의리적 구토는 약 5000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는데, 당시 잘사는 부잣집 재산이 1000원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액수의 비용이다. 덕분에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하기도 하고, 많은 발전을 이룬 밑바탕이기도 하다. 의리적 구토는 구체적인 제작의 결과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의 자본과 인력이 주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기점으로 설정되었다.